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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집,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중입니다 – 40대 주부의 감성 살림 이야기

by eungaon 2025. 4. 12.

주부 살림 이야기


1. 예전엔 ‘편하면 그만’이었다, 지금은 ‘좋아야 오래 본다’

“그냥 대충 있던 거 써. 없어도 돼.”
예전의 나는 참 자주 그렇게 말하곤 했다. 앞치마도, 수저도, 수건도. 뭐든 ‘그냥 있는 거’면 족했다. 육아에 살림에 허덕이는 날들이었으니까. 그땐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고, 살림은 그저 지워야 할 ‘투두 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러다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거실을 쓱 둘러보는데 왠지 마음이 휑했다. 해는 잘 들고, 집도 정리는 되어 있었는데 이상하게 차가운 느낌. “왜 우리 집엔 따뜻한 기운이 없지?” 스스로 던진 질문이었다. 곰곰이 들여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꽃도 없고, 색감도 없고, 내가 고른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 집에 나는 없구나.”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마음을 담기 시작했다. 마트에 간 김에 예쁜 접시 하나 샀고, 세일하던 패브릭 앞치마를 들고 와봤다. 물론 처음엔 어색했다. ‘이런 게 뭐가 중요해’란 생각이 습관처럼 올라왔지만, 막상 그걸 쓰는 순간, 기분이 달랐다. 오랜만에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는 게 이렇게 가슴 뛰는 일이었나.

이제는 뭐든 ‘좋아서’ 산다. 내 눈에 예쁜 그릇, 손에 익은 행주, 발이 따뜻한 주방 러그. 편하면 좋고, 기능도 중요하지만, 오래 보려면 결국 마음이 가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살림도 사랑도 그렇게 오래 가는 게 아닐까, 가끔 생각해본다.


2. 살림은 기능이 아니라 감정으로 고르는 것

살림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늘 부러웠다. 반찬이 척척, 수납이 똑딱, 청소도 번쩍.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보다 더 부러운 건 ‘자기만의 방식으로 집을 가꾸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집은 가구가 많지 않아도 아늑하고, 어떤 부엌은 특별한 소품이 없어도 분위기가 좋다. 그게 다 ‘그 사람만의 살림 감정’이 있는 집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나도 이제 조금씩 그걸 흉내 낸다. 예전엔 인터넷에서 추천하는 제품 위주로 샀다면, 요즘은 내 손이 자주 가는 걸 산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좋으니까. 뚜껑 열기 편한 반찬통, 내가 좋아하는 색의 그릇, 설거지하면서 흥얼거릴 수 있는 음악. 그런 사소한 것들이 내 하루를 다르게 만든다.
이게 뭐라고 싶은데, 진짜 좋다.

사실 살림을 ‘잘’ 하려는 마음보다는, ‘내가 좋고 편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 감정이 들어간 살림은 오래 해도 덜 지치고, 반복돼도 싫지 않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서, 예쁜 수세미 하나에도 기분이 달라지고, 주방에 꽃 한 송이만 꽂아놔도 밥 차리는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살림을 살림답게 하는 대신, 내 식대로 하기로 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웃으면 되는 거니까. 꼭 좋은 물건이 아니라, 좋은 기분을 주는 것들을 곁에 두는 것. 그게 내가 요즘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감정이 있는 집은, 사는 사람의 마음도 다정하게 만든다. 살림은 기술이 아니라 결국, 마음이더라.


3. 내가 고른 것들이 쌓일수록, 내 삶의 색이 또렷해진다

“이건 내가 골랐어요.”
처음 그 말을 속으로 한 날, 살짝 눈물이 났다. 아이 물건에 밀려 항상 뒷전이던 내 취향이 그제야 조금씩 되살아나는 느낌이랄까. 아이 방은 색색깔인데 내 방은 늘 회색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거실 한쪽에 내가 좋아하는 베이지 쿠션을 놓았다. 주방에는 라벤더 향이 나는 디퓨저를 놓았고, 작은 테이블에는 책 한 권과 따뜻한 찻잔을 두었다.
딱 그 정도. 근데 마음은 그보다 훨씬 더 충만하다.
내가 고른 것들이 쌓이면서, 내 삶의 색이 뚜렷해지고 있다.

예전엔 살림이 정해진 틀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퍼즐처럼 재밌다. 오늘은 어떤 느낌을 더할까? 커튼을 바꿔볼까? 벽에 그림 하나 붙여볼까?
누구는 “그런 게 무슨 의미야” 하겠지만, 내겐 너무 큰 변화다.
내가 좋아하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집 안이 달라졌고
그 집 안에 사는 내 마음도 부드러워졌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산다. 아이가 먼저인 사람도 있고, 남편이 중심인 집도 있다. 난 이제 조금 욕심을 낸다. 내가 중심인 공간, 내가 행복한 집.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살림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는 거지만,
그 속에 ‘나’가 너무 작아지지 않기를, 요즘은 바라고 또 바란다.


💬 마무리하며

살림이라는 건 매일 반복되는 일이라 때로는 지겹고,
때로는 의미 없어 보일 때도 있지만,
내가 직접 고르고, 꾸미고, 마음 담는 그 행위 속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내 손끝에서 피어나는 작은 취향들,
그게 요즘 저를 웃게 만드는 진짜 이유예요.

당신의 집엔,
지금 어떤 기분이 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