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정도는 해도 되잖아”라는 용기
"오늘은 좀 쉬어도 되는 날이야."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니고, 아이가 특별히 덜 힘들게 한 날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너무 지친 거죠. 아침부터 등원 전쟁, 쏟아지는 집안일,
틈틈이 시댁 안부 전화에 저녁 메뉴 고민까지.
그런 날엔 그냥 ‘나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옵니다.
그럴 때 저는 지갑 속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냅니다.
"그래, 오늘은 나한테 쓰는 날이다." 왠지 큰돈을 쓰면 죄책감이 들지만,
만 원쯤은 괜찮잖아요. 이 정도는 해도 되잖아, 나도 사람인데.
그 만 원으로 하는 건 별거 없어요.
도넛 두 개에 라떼 한 잔. 혹은 드럭스토어에서 새로 나온 립밤 하나.
가끔은 5천 원짜리 꽃 한 다발. 이걸 사면서 머릿속 계산기를 튕기는 내가 우습기도 하죠.
"음료가 5,300원이니까, 도넛은 3,800원… 어? 넘었네. 그럼 도넛 하나만…"
그러다 또 속으로 투덜대요.
"아니 근데, 이 정도도 못 써?"
그 작은 소비가 생각보다 큽니다.
마음이요. 누군가 나를 대접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인정해주는 기분이거든요.
그날은 기분이 진짜 다르게 흘러가요.
어깨 힘이 빠지고, 아이의 떼쓰기에도 조금 더 여유가 생기고.
“이 정도는 해도 돼.” 그 말이 나를 살립니다, 정말로.
2. 소소한 사치의 심리학 – '나를 중심에 두는 연습'
"그거 하나 사면서 왜 이렇게 행복해?"
남편이 가끔 물어요. 저는 그럴 때 웃으며 이렇게 말하죠.
"이건 그냥 도넛이 아니야. 오늘 하루 버틴 보상이지."
사실 주부가 되면요, 모든 소비에 이유가 필요해져요.
애 장난감은 ‘발달에 좋아서’, 식재료는 ‘건강한 집밥을 위해’,
남편 옷은 ‘출근할 때 단정하라고’.
그런데 내 물건을 살 땐 꼭 주저해요. "굳이 지금 이걸 사야 하나?"
그래서 소소한 사치가 더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단돈 만 원이라도, '나 중심'의 소비를 해보는 거.
예를 들어, 저는 이달의 '만 원 사치 리스트'를 만들어둬요.
- 벚꽃 에디션 머그컵
- 예쁜 스티커가 붙은 우유 한 병
- 핑크빛 수세미 (그냥 보자마자 웃음 나서요)
이런 사치는 아무도 눈치 못 채요.
집안 꾸미는 것도 아니고, 명품도 아니에요.
하지만 이런 것들 덕분에 아침에 눈 떴을 때 살짝 미소가 지어져요.
엄마로서가 아닌, '나'로서의 취향이 있다는 것.
그게 그렇게 힘이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남편이 그런 말 하면, 이제는 대답해요.
"응, 행복하니까. 그걸로 충분하지?"
3. ‘나를 대접하는 날’을 선포해봤습니다
요즘 저는 스스로 정한 ‘엄마 대접의 날’을 만들었습니다.
한 달에 하루, 큰 이벤트는 아니고 그냥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 원 내외로 즐기기로 한 거죠.
이 날은 미리 달력에 빨간 하트를 그려둡니다.
아이가 잘 모르게 조용히, 나 혼자 약속하는 거예요.
아침 등원 후, 카페로 향해요.
익숙한 카페도 좋지만, 그날만큼은 일부러 안 가본 데 찾아가요.
조용한 창가에 앉아 라떼 한 잔. 핸드폰도 멀리 밀어놓고,
그냥 나만 바라보기. 그 짧은 1~2시간이, 정말 대접받는 기분이에요.
그리고 이 날만큼은 청소도, 반찬 걱정도 하지 않아요.
점심은 배달로! "오늘은 내가 요리 안 해. 엄마도 밥은 사 먹을 수 있어!"
아이에게도 자연스럽게 말해요.
"오늘은 엄마가 쉬는 날이야. 엄마도 가끔은 쉬어야 해."
그 모습을 본 아이가 언젠가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엄마, 다음에 나도 내 쉬는 날 만들래!" 그 말에 마음이 찡했어요.
내가 나를 아껴주는 모습이, 아이에게도
'엄마도 소중하다'는 걸 가르쳐주고 있었던 거예요.
마무리하며
만 원으로 뭐가 되겠냐고요?
그 만 원이 있어야 내 하루가 달라져요.
그 만 원이 있어야, 엄마인 내가 나도 사람이라는 걸 다시 느껴요.
사치라고요? 아니요. 이건 생존이에요.
나를 지키기 위한, 작지만 확실한 생존 루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