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모범이 되는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 자신은 점점 지쳐갔습니다.
결국 저는 완벽함을 내려놓고 ‘괜찮은 어른’이 되기로 했고, 그 선택이 제 삶과 아이의 관계 모두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1. 모범이 아닌 ‘진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아침마다 밥을 차리고, 숙제를 챙기고, 아이가 울면 다독이고, 틀린 문제는 차근히 다시 설명했습니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니까"라는 말로 제 감정을 눌렀습니다.
그 결과 어느 순간 제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고, 감정 표현이 무뎌졌습니다.
하루는 아이가 제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기계처럼 똑같아. 뭔가 재밌는 걸 해도 안 웃고, 뭐라고 해도 늘 똑같이 말해.”
그 말이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잘해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감정 없는 엄마를 보고 있었던 겁니다.
그날 이후 저는 결심했습니다.
이제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되자고요.
아이에게 “엄마 오늘 조금 힘들어”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오늘은 기분이 조금 울적했어. 네가 와줘서 고마워”라는 표현도 곧잘 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도 자기 기분을 더 편하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오늘 학교에서 속상했어. 그냥 말하고 싶었어.”
감정을 숨기지 않으니까, 아이도 감정을 감추지 않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자 수잔 데이비드 박사는 “정서 민감성(emotional agility)이 높은 부모일수록, 아이의 자기 이해력과 회복탄력성이 더 강해진다”라고 말합니다.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조절하는 모습이 아이에게 훨씬 건강한 정서 본보기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저는 모범적인 말보다는 실제로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와 나, 둘 다 사람이니까요. 그런 모습을 함께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2. 감정을 멈추고 나서야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어려운 순간 중 하나는 아이의 말과 행동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특히 피곤하거나 감정적으로 지친 날에는 사소한 말에도 욱하게 반응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아이가 짜증을 낼 때마다 “왜 그렇게 말하니?” “그게 예의니?” 하며 바로 훈육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되질 않았고, 아이도 저를 피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아이가 눈을 피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나랑 얘기하면 꼭 화부터 내잖아.”
그 말이 제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화낸 뒤에는 항상 사과했지만, 아이는 그 과정이 불안했다고 느낀 것입니다.
“다시 화날까 봐 말 안 해”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사과보다 중요한 건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이 올라올 때, 단 5초만 멈추는 연습입니다.
숨을 크게 쉬고, 물 한 모금 마시고, 아이에게 “엄마가 조금만 있다 얘기할게”라고 말하는 루틴을 만들었습니다.
쉽진 않았지만, 반복하니 습관이 되었습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아이가 말했습니다.
“요즘 엄마는 말하기 전에 생각하는 것 같아.”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맞아. 엄마도 배우는 중이야.”
심리학적으로 이는 반응성과 대응성의 차이입니다.
반응은 감정에 따라 즉각적으로 움직이는 것,
대응은 감정을 자각하고 조절해서 행동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양육의 질’은 얼마나 감정을 잘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도 합니다.
지금도 저는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이 감정은 나의 것이고,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그 말을 하면, 제 목소리가 낮아지고, 아이의 얼굴이 다시 제 눈에 들어옵니다.
그때서야 진짜 대화가 시작됩니다.
3. 아이에게 하듯 나에게도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과거의 저는 아이에게는 다정했지만,
정작 제 자신에게는 단호하고 날카로웠습니다.
일을 놓쳤을 땐 “왜 이것도 못하지?”
목표를 못 지켰을 땐 “역시 난 안 돼”
실수하면 “엄마가 이래도 되나?”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왔습니다.
매일 아이에게는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라고 말하면서
저는 저를 하루도 제대로 다독이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제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왜 혼자 있을 땐 웃질 않아?”
그 질문이 제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아이 앞에선 웃었지만, 저 스스로에겐 너무 인색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거울을 보며 “오늘도 잘해볼게”
일이 꼬인 날엔 “이 정도면 충분히 잘했어”
잠들기 전엔 “하루 잘 버틴 나, 고마워”
이런 말들을 저 자신에게 건네기 시작했더니,
하루의 리듬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감정 기복이 줄어들고 자존감이 회복된 것입니다.
아이에게 웃어주는 게 더 자연스러워졌고,
실수해도 덜 흔들렸습니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 박사는 “자기자비(self-compassion)는 정신적 회복력의 핵심 요소이며, 양육자의 자기자비는 자녀의 정서 안정에도 직접적 영향을 준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나에게 따뜻해야, 아이에게 따뜻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지금도 아이에게 쓰는 말 중 가장 따뜻한 말을
하루에 한 번 제게도 건네려 합니다.
“괜찮아, 다시 하면 돼.”
그 한 문장이, 엄마인 제 감정도 살려냅니다.
완벽한 엄마보다, 회복하는 어른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처음엔 아이에게 뭔가를 해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더 많이, 더 잘, 더 완벽하게.
하지만 그럴수록 제 마음은 지쳐갔고, 아이와의 거리는 멀어졌습니다.
회복 이후 깨달은 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감정을 조절하고 회복하는 어른의 태도였습니다.
지금은 완벽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실수해도 설명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내 마음을 돌보는 데 집중합니다.
그게 아이가 자라는 데 훨씬 더 건강한 본보기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말보다 감정 처리 방식, 위기 대응법, 회복력에서
삶의 방식을 배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아이 앞에서 ‘괜찮은 어른’의 모습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