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두 번째 하루
오후 4시 반쯤, 현관에서 ‘달그락’ 소리가 납니다.
“엄마~ 나 왔어!”
그 순간부터 하루가 또 한 번 시작됩니다.
오전의 평화로움은 휘리릭 사라지고,
정신없는 시간이 휘몰아치기 시작하죠.
예전엔 아이가 오면
‘숙제는? 가방은? 손 씻었어?’
숨 돌릴 틈도 없이 잔소리부터 시작하곤 했습니다.
근데요, 그렇게 하면 저도 아이도 둘 다 지칩니다.
그래서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아이와 눈 마주치며 꼭 안아줍니다.
“오, 우리 ○○이 왔네~ 수고했어, 오늘 하루 어땠어?”
딱 5분만 아이에게 마음 온도를 나눠주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아이의 표정이 바뀝니다.
말투도 차분해지고, 저도 훨씬 여유로워지죠.
그리고 바로 간식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 전엔 무조건 먹이고 봤는데,
요즘은 아이와 함께 물 한 컵 먼저 마십니다.
“우리 물 먼저 마시고 간식 골라볼까?”
작은 습관이지만 그걸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루가 다시 리듬을 찾습니다.
아이 하원 시간은 ‘숙제의 시작’이 아니라 ‘정서 회복 시간’,
그렇게 바라보니까
저녁 시간의 분위기부터 달라졌습니다.
2. 저녁 준비는 ‘완벽함’이 아니라 ‘흐름’을 탑니다
하원 후부터 저녁까지의 2~3시간…
그 시간이 저는 하루 중 가장 긴장됐습니다.
“저녁 뭐 해 먹지?”,
“내일 등원 준비는?”,
“설거지, 빨래는 언제 해?”
머릿속이 계속 바쁘게 돌아갔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모든 걸 내려놓고
‘흐름’대로만 가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시간을 나누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루틴을 짜본 거예요.
첫 30분은 아이와 함께 리듬을 낮추는 시간으로 씁니다.
TV를 같이 보기도 하고,
책을 한 권 읽기도 하고,
아이는 그림 그리고 저는 옆에서 커피 마시며 앉아있기도 합니다.
그 다음 1시간은 저녁 루틴 타임.
TV 볼 거면 그 시간에 틀어줍니다.
그 사이 저는 부엌에서 저녁 준비.
아이도 가끔 와서 “뭐 도와줄까?” 묻기도 합니다.
이때 ‘완벽하게 맛있고 건강한’ 메뉴는 포기합니다.
간단하지만 따뜻한 한 끼,
그게 더 중요하더라고요.
두부조림, 계란말이, 국 하나, 김치 꺼내면 끝.
그걸 예쁘게 담고, 조용히 식탁에 앉습니다.
아이도 느낍니다.
“엄마가 오늘 좀 여유 있네.”
그 여유가 밥맛을 살리고,
식사 시간을 ‘의무’가 아닌 ‘쉼’으로 바꿔줍니다.
3. 하루를 무사히 보낸 우리에게 주는 작고 단단한 마무리
저녁 먹고 나면 누구나 그렇듯
갑자기 힘이 쭉 빠지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하아… 이제 또 설거지, 목욕, 내일 준비…”
어떤 날은 그냥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녁 8시 반 이후부터는
‘정리’가 아니라 ‘정돈’의 시간으로 씁니다.
뭔가를 다 해내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마무리하는 흐름을 만드는 거죠.
식탁은 아이와 함께 치웁니다.
“넌 숟가락만 가져다줘~” 하며
조잘조잘 이야기 나누다 보면
설거지도 어느새 끝나 있습니다.
그리고는 작은 스탠드만 켜두고
잠깐이라도 책을 펼치거나 음악을 틀어둡니다.
아이도 조용히 퍼즐 맞추거나 그림을 그립니다.
TV 소리 없는 저녁,
의외로 아이가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9시 반쯤 되면 “우리 이제 하루 끝내자~” 하며
함께 이불 펴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아이 손과 발을 닦아줍니다.
그 순간이 참 따뜻합니다.
“오늘도 수고했어.”
그 한마디가 제 마음에도 울립니다.
잠든 아이를 보고
하루를 돌아보면
“오늘도 무너지지 않았구나” 싶은 안도감이 밀려옵니다.
마무리하며
아이 하원 후 시간은
생각보다 짧고, 생각보다 소중한 시간입니다.
완벽한 일정표보다,
조금 느슨하지만 따뜻한 흐름이 더 중요하다는 걸
저는 매일 저녁마다 느낍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다
그 시간 속에서 작은 평화를 발견해보세요.
"오늘도 잘 견뎌냈다."
그 말 하나면,
우리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