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부모님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살아보니, 부모님도 그저 자신만의 인생을 버텨온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은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1. 부모님도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아이를 키우면서 저는 처음으로 부모님을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항상 답을 알고 있고, 무슨 일이든 해결해 줄 거라 믿었습니다.
엄마가 화를 내면 "왜 저렇게 나를 미워할까?" 생각했고,
아빠가 피곤에 겨워 말없이 앉아 있으면 "날 사랑하지 않나?" 서운해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부모가 되어보니
매일 쏟아지는 집안일, 아이의 요구, 경제적 부담 속에서
'항상 친절한 부모'로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습니다.
가끔은 너무 힘들어서 말 없이 등을 돌리기도 했고,
마음과 다르게 날카롭게 반응하는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그때 문득 어릴 때 엄마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엄마가 이유 없이 짜증을 내던 날,
아빠가 지쳐 잠든 밤,
그 모든 순간들이 이제는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심리학자 브루스 페리 박사는 “어린 시절 부모를 이상화한 기억은 성인이 되어 현실 감각과 충돌하면서 심리적 성숙이 일어난다”라고 설명합니다.
저 역시 ‘완벽하지 않은 부모’를 이해하면서
제 감정도, 제 부모에 대한 기대도 자연스럽게 현실로 내려왔습니다.
부모님도 결국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던 중이었다는 것.
그 사실을 인정한 순간, 원망이 줄어들고 감사가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소소한 팁
부모님을 떠올릴 때 '왜 그랬을까' 대신 '그땐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질문을 바꿔보세요.
생각의 방향이 바뀌면 감정도 부드러워집니다.
2. 부모님과 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웠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부모님과의 대화 방식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조언을 들을 때마다 답답했습니다.
“애한테는 무조건 엄하게 해.”
“옛날엔 다 그렇게 컸어.”
그런 말을 들으면 대화가 끊기곤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 세대가 겪어온 삶을 조금씩 들여다보면서
그 말들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 방식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족을 부양해야 했고,
아빠는 평생 같은 직장에서 묵묵히 버텼습니다.
꿈이나 자아실현 같은 단어는 사치였을 시대를 살았던 겁니다.
그렇게 알게 되니, 이제는 조언을 들을 때
예전처럼 '맞다, 틀리다'로 재단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그 시절엔 그럴 수밖에 없었지"라고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저도 제 방식대로 키우겠다는 걸 부드럽게 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엄마 말대로 엄하게 할 때도 있겠지만, 나는 아이랑 먼저 대화를 해볼게."
이렇게 말하면 다툼 없이 서로 입장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심리학자 에리크 에릭슨은 인간 발달 이론에서
성인의 과업 중 하나를 '세대 간 통합'이라고 했습니다.
부모 세대와 내 세대를 적대가 아니라 이해와 존중으로 잇는 것이
성숙한 인간관계의 핵심이라는 설명입니다.
부모님과 완벽하게 합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으면
관계는 충분히 부드럽게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소소한 팁
부모님 조언에 바로 반박하지 말고, “그땐 그렇게 하셨군요”라고 먼저 받아보세요.
이 한마디가 대화를 막지 않고 이어가게 해줍니다.
3. 부모님도 인생을 배우는 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부모님이 항상 강하고, 확신에 차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모님도 때로는 불안하고 외롭고 두려워하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은퇴한 후 무기력해진 모습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그토록 강인했던 아버지도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는 게 두려웠던 것입니다.
어머니도 아픈 몸을 끌고 병원에 다니면서
“나도 이제 예전 같지 않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부모님을 달리 보기 시작했습니다.
존경의 대상이나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인생 선배로.
심리상담에서는 이를 **역전이 아닌 ‘수평적 관계로의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부모와 자식이 평생 수직 관계로 남으면 서로를 억압하게 되지만,
성인이 된 자녀는 부모를 같은 인간으로 바라보고
존중과 배려로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부모님께 ‘내려다보지 않고’, ‘올려다보지도 않고’
그냥 옆에 서 있으려 합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서로 다른 속도로 걷는 존재로 인정하는 것.
그게 부모님과 저 모두를 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소소한 팁
부모님을 바라볼 때 '나를 키운 부모'가 아니라, '자기 삶을 살아낸 사람'으로 상상해 보세요.
감정의 거리도, 마음의 거리도 훨씬 가까워집니다.
부모를 이해하는 순간, 나도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기대한 만큼 실망하고, 실망한 만큼 서운했던 시간들이 길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도 결국
자기 삶을 버티고 배우며 살아온 하나의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면서
제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제는 부모님을 미워하거나 이상화하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때로는 서툴고 때로는 용감한 존재로 바라보려 합니다.
부모를 이해하는 과정은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과 같았습니다.
오늘도 부모님과 함께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길 위에서, 저도 조금 더 괜찮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