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몰라도 매일 정성껏 돌아가는 엄마의 하루
1. 하루의 엔진, 아무도 모르게 먼저 도는 아침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아침 6시.
거실은 조용하고, 창밖은 어둡다.
모두가 자고 있을 때, 나는 오늘의 첫 발걸음을 뗀다.
그 조용한 정적 속에서 주방 불을 켜는 찰나,
문득 ‘이 시간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방해하지 않는 시간.
나만의 온전한 구간.
커피포트를 돌려놓고,
쌀을 씻으며 오늘 하루를 그려본다.
남편은 바빠서 간단히 먹고 나갈 테고,
아이는 김을 싸줘야 잘 먹는다.
오늘은 된장국을 끓일까, 어제 남은 채소를 볶을까…
이런 고민이 매일인데도 신기하게 지겹지가 않다.
마치 작은 식당 사장님이 된 기분이랄까.
도시락을 싸고, 수저를 챙기고, 반찬통을 꺼내면서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하루를 돌린다.
이 루틴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내가 안 하면 온 집안이 늦어지는 구조다.
그래서 늘 조용히, 묵묵히, 그 누구보다 먼저 움직인다.
아이가 일어나서 말한다.
“엄마, 벌써 밥 다 했어?”
나는 웃으며 말한다.
“응, 엄마는 새벽반이야.”
2. 눈에 보이지 않지만, 촘촘하게 짜인 낮의 루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아오는 길,
나는 마트에 들러 반찬 재료를 산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잘 먹고 잘 자라는 게 제일 특별한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알게 됐다.
장을 보고 돌아오면 세탁기 버튼을 누르고,
바닥 청소를 하면서 유튜브를 튼다.
누군가는 그냥 일이라고 하겠지만,
이 루틴이 집 안의 공기와 분위기를 바꾼다.
11시가 넘으면 잠깐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소파에 앉는다.
정적이 흐르는 집 안에서 “지금, 나만 있는 이 시간”을 즐긴다.
핸드폰을 보다가도 문득, 오늘은 나한테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생각해본다.
“고생했어.” “조금 쉬어도 돼.”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아서, 내가 해준다.
엄마도 누군가에게 토닥임이 필요하니까.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나면, 남은 빨래를 널고,
아이 간식을 챙겨 놓는다.
이 모든 일은 티도 안 나고, ‘당연’하다고 여겨지지만
나는 이제 이 작은 일들이 모여 가족의 하루를 만든다는 걸 안다.
그래서 누구보다 정성을 다해, 오늘도 내 자리를 지킨다.
3. 보이지 않지만 튼튼한 마음의 근육
오후 4시가 되면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 하루를 한번 정리해본다.
오늘 뭐가 힘들었고, 뭐가 좋았는지.
늘 정신없이 흘러가 버리는 하루 속에서도 나는 잠깐의 숨을 들이쉬며 생각한다.
‘이 루틴을 유지하고 있는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
하원 후 아이와 놀이터를 걷다가
문득, 내 손을 꼭 잡는 그 작은 손에 “엄마 오늘 뭐 했어?” 묻는다.
그 질문 하나에 가슴이 찡해진다.
‘엄마는 오늘도 너를 위해 하루를 돌렸어.’
아이는 모를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엄마의 하루는 그냥 흘러간 게 아니라,
가족이라는 배를 한 방향으로 잘 이끌기 위한 조타였다는 걸.
누군가는 내 하루를 루틴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걸 ‘우리 가족을 위한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엄마의 시간표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도 단단한 기둥이다.
이 리듬이 오늘도 가족을 지탱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걸 해내는 사람이다.
이름은 없어도, 참 자랑스러운 이름.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