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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도 탈진한다, 번아웃 증후군 극복기 (감정소모, 자기관리, 회복경험)

by eungaon 2025. 4. 25.

주부 번아웃


주부는 쉼 없이 움직이는 역할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족을 위한 일이더라도, 지치고 탈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40대 주부로서 경험한 번아웃의 징후와 회복 과정을 공유합니다.


1. 번아웃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게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오늘 하루가 시작됐다는 사실’에 숨이 턱 막히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게 제가 처음 느낀 탈진의 신호였습니다. 피곤한 게 아니라, 무기력하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무거웠습니다.

처음엔 이게 ‘갱년기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생리 주기도 규칙적이었고, 몸 상태는 큰 이상이 없었습니다. 건강검진에서도 딱히 특이사항이 없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주방에만 서 있어도 눈앞이 어지러웠습니다. 평소 하던 일들인데도 하나하나가 버거웠고, 그때 처음 ‘혹시 이게 번아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번아웃 증후군은 단순한 피로감이 아닙니다. 감정이 소모된 상태에서, 에너지를 회복할 틈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점점 ‘내가 없다’고 느끼는 상태입니다. 특히 주부는 일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주변에서 알아차리기 어렵고, 그래서 더 오래 참고, 더 깊이 탈진합니다.

저는 육아와 집안일, 그리고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 감정적으로 소모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명절 준비는 당연히 제 몫이었고, 아이 시험 기간마다 함께 새벽까지 앉아 있었으며, 남편이 퇴근하면 하루 종일 집에서 ‘편히’ 있었던 사람처럼 대해야 했습니다. 그 모든 상황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내가 없어지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소소한 팁
하루에 한 번, “지금 내 상태는 어떤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별일 없다’는 답 말고, 진짜 내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연습부터 시작해 보면 좋습니다.


2. 나는 괜찮지 않았다, 번아웃 자가진단의 시작

저는 감정노동이 일보다 더 힘들다는 걸 처음 체감했습니다. 특히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항상 괜찮은 사람’ 역할을 맡다 보니, 힘들다고 말할 타이밍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을 때,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인터넷에서 번아웃 자가진단 항목을 찾아보았고, 10개 중 7개가 저에게 해당했습니다.

  •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버겁다
  • 특별한 이유 없이 짜증이 많아졌다
  • 예전에 즐겁던 일도 무감각하게 느껴진다
  • 가족과 대화가 피로하게 느껴진다
  • 스스로를 자주 자책한다
  • 식욕이나 수면 패턴이 달라졌다
  •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 중 3가지 이상이 해당되면 번아웃의 초기 신호라고 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나는 아이 엄마니까, 나는 주부니까, 이 정도는 다들 감내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문제였습니다. 오히려 그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갑옷이 저를 더 지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는 모든 걸 내려놓고 나를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가계부 정리도 잠시 멈췄고, 하루 세끼를 꼭 차리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주변에 많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에게 “엄마가 오늘은 너무 힘들어. 너 혼자 숙제 좀 해볼래?”라고 말해보니, 의외로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남편에게도 감정적으로 말하기보다, “오늘 하루는 좀 지쳐서 누워 있을게”라고 솔직히 말해보니, 생각보다 이해해 주었습니다.

소소한 팁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는 주기적으로 해보세요. 글이 아닌 말로, 아니면 스티커로 표현해도 좋습니다. 감정의 온도를 눈에 보이게 하는 건 매우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3. 회복은 느리게 오지만, 반드시 옵니다

번아웃을 겪고 난 뒤, 제 삶의 리듬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큰 계획 없이 ‘하루에 하나만 해도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출발했습니다. 청소도, 요리도, 외출도 한 가지씩만 하기로 정하고, 나머지는 ‘굳이 안 해도 되는 일’로 분류했습니다.

우선 움직이는 시간을 줄이고 앉는 시간을 늘렸습니다. 예전엔 식사 후 바로 정리하고 쉴 틈 없이 움직였지만, 요즘은 일부러 거실에 앉아 10분은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이 짧은 시간이 생각보다 큰 회복을 줍니다. 두 번째는 ‘귀찮음’을 대하는 태도를 바꿨습니다. 이전엔 귀찮은 일을 억지로라도 해냈는데, 이제는 ‘이 귀찮음이 내 몸의 경고일 수 있다’고 받아들이며,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나만의 기쁨 루틴’ 만들기였습니다. 매일 저녁, 15분 동안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향초를 켭니다. 아이가 잠든 후,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 그게 저를 다시 살아있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사치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저에겐 ‘회복’이었습니다.

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마슬라크 교수의 번아웃 정의에 따르면, 감정적 고갈, 냉소적 태도, 효능감 저하가 핵심 증상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경험했고, 지금은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중입니다.

소소한 팁
하루에 ‘나만을 위한 의식’을 하나 만들어 보세요. 커피 내리기, 창문 열기, 음악 듣기 등 반복되는 루틴이 ‘나를 중심에 세우는’ 작은 의식이 됩니다.


쉬는 것도 책임입니다

주부라는 역할은 끝이 없습니다. 누군가 대신해 줄 수도 없고, 어디까지 해야 ‘충분하다’는 기준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자주 지칩니다. 번아웃은 특정 직업군만 겪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히 누군가를 돌보는 삶을 사는 이들, 특히 주부에게도 분명히 찾아옵니다.

중요한 건, 이 지침이 무기력으로 이어지기 전에 ‘나’에게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쉬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오늘 하루, 나를 가장 먼저 챙기는 선택을 해보시기 바랍니다.